스기우라 고헤이 & 안상수

스기우라 고헤이 & 안상수

봉달삼촌 0 1,511 2004.10.16 00:51
책과 컴퓨터 9 (2003년 가을호)

[특집] 한글- 변화하는 문자
[대담] 만다라에서 비롯된 문자로
- 한글의 복합성에 관해
스기우라 고헤이 & 안상수

동아시아에 위치한 3개국, 즉 한국, 중국, 일본인은 비슷한 생김새를 갖고 있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전혀 다르다. 한국인은 다른 국가와의 ‘차이’를 인식하고 한글이라는 독창적인 문자를 디자인했다.

현대에도 문자는 시각 문화의 중심에 있다. 말하자면 문화는 문자라는 땅에 피어난 꽃이다. 문자는 문화적 미의식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해지는 현대 한글 디자인

한국 시각문화의 현대성은 한글 디자인에 아주 잘 반영되어 있다. 그곳에는 한글이라는 문자가 갖는 ‘이질적’인 의식이 짙게 표현되었다.

여기서 소개하는 것은 한국 디자이너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제작한 한글 포스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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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성(異)’을 추구한 문자

[스기우라] 작년에도 서울에서 안상수씨와 대담을 했지요. 그때는 ‘디자인에 있어서 문자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오늘은 한글 타이포그라피에 대해 논리적으로 접근하며, 작품을 통해 흥미롭게 연구하고 계신 안상수씨에게 한글 문자의 매력에 대해 들어보려 합니다. 안상수씨는 종종 ‘한글은 한자의 배를 가르고 태어난 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입니까?



[안상수] 한글 문자의 가장 큰 근본 개념은 ‘다르다(異)’는 것입니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1446년에 만든 문자로 이것을 포고한 것이 『훈민정음』입니다. 그 『훈민정음』에 한자로 해설을 붙인 ‘해례본’ 첫 행에 ‘국지어음, 이호중국(國之語音,異乎中國)*1(역자주- 나라말이 중국과 다르다)’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애초부터 명확히 ‘다르다(異)’는 개념이 드러난 거죠.

이것은 당시, 한국 문화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중국어와 다르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천년이 넘는 오랜 시간동안 한자를 차용했기 때문에 그 중압감이 굉장히 컸을 겁니다. 그런 환경에서 ‘다르다(異)’는 것을 표명함으로써 한국 언어로 표기할 수 있는 새로운 문자로서 한글이 ‘한자의 배를 가르고’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스기우라] 음. 이 ‘다르다(異)’는 말에는 매우 강한 결의가 담겨있는 것 같네요. 생각해보면 일본의 ‘가나’문자는 ‘동질성(同)’을 추구한 문자에요. 예를 들면 일본 문자인 가나의 ‘あ[아]’는 안상수씨의 ‘안(安)’에서 비롯된 글자입니다. 이렇게 가나는 한자를 흘려 쓴 것으로 ’같은 모양‘으로 간략해진 형태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한글은 ’차별성(異)‘을 추구한 문자라는 거죠. 두 문자체계의 사상이 어떻게 다른지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 같네요.



[안상수] 중국어는 단음적 체계의 ‘독립어’인 데 비해 한국어는 다음절 문자로 일본어와 마찬가지로 우랄 알타이어계 교착어(조사의 활용이나 접미사 변화가 특징적인 언어)에 속합니다.

그러나 한국어는 활용 음절이 천 개 이상 되어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모든 문자를 한자에서 빌어 쓸 수 없었습니다. 이 현실적인 ‘차이(異)‘를 인식·해석하고 과학적·체계적, 그리고 창의적으로 새로운 문자를 디자인한 겁니다. 그 결과 한글이 창제된 거죠. 한편 한국어와 비교해 일본어는 음절이 적기 때문에 한자를 단순화시킬 수 있었겠죠. 말하자면 일본어 가나문자는 ’한자가 순산한 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글은 문자의 근본을 깊이 연구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천지자연의 바탕에 내재된 음양원리, 인간의 음성과 언어의 근원을 따지고 발성이 어떻게 분해되는지, 어떻게 형태로 연결할 수 있는지 까지 연구한 것입니다. 한글 모음은 천(天)·지(地)·인(人)의 삼재(三才), 자음은 ‘음양오행’을 기초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림 9)



[스기우라] ‘말하는’ 근본 원리에 눈을 돌려 한글 자형이 탄생되었다. 간략화하는데 치중한 일본 가나문자와는 발상법자체가 굉장히 다르네요.

그런데 이질성(異), 즉 차이가 생긴다는 것을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런 면이 있어요. 기호를 만들어내거나 설계할 때 가능한 기능적으로 하기 위해 여분의 것을 배제하고 심플한 형태를 추구해 갑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기능적인 처리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읽을 때나 말할 때에도 많은 ‘잉여성(Redundancy)’이 포함되지요.

사실 문자나 언어에는 불필요한 부분이 많이 들어있으며 인간은 그것을 사용해 즐기면서 의사 소통해왔습니다. 예를 들면 편지에 쓴 문장이 눈물로 번져 여기저기 지워지더라도 충분히 다시 읽을 수 있죠. 이 여분, 즉 잉여성이 아름다움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지나치게 많으면 안되겠지만 적당한 잉여성은 풍요로운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상수씨가 설계한 안서체(安書体)는 자음·모음의 기본형을 정하고 그것을 상하로 나열한 것이죠. (그림 10) 즉 한 문자의 전체 형태를 일부러 사각틀에서 꺼내 보여줍니다. ‘한글은 사각 안에 가둬두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안상수씨의 주장이죠.



[안상수] 한글을 디자인할 때, 그 형태는 『훈민정음』의 제자(制字)원리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한글의 초성(자음), 중성(모음), 종성(음절 끝에 오는 자음·받침)이 고유의 위치를 유지해야합니다. 한글은 각각의 자소(字素)가 고유의 위치에서 기능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개념을 바탕으로 디자인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사각에서 벗어난 형태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단, 이 탈사각형은 현재 쓰이고 있는 한글문자와는 전혀 다른 형태입니다. 한글이 창제된 초기에는 이런 개념이 명확했지만 한자의 미감(美感)에 영향을 받아 사각 틀 안에 고정되어 버린 것입니다.



[스기우라] 알파벳도 실은 중앙부분 ‘x하이트’(소문자의 높이)만으로 설계할 수 있는데 어센더(기본보다 위로 올라간 부분) 나 디센더(기본보다 아래로 내려간 부분)를 추가하고 여분의 선을 위 아래로 그었습니다. 문자가 끊임없이 춤추고 있죠. 한자나 가나 문자로 말하면 문자의 명암, 즉 농도 차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런 문자의 역동성, 불규칙한 형태가 읽기 쉽게 하는 동시에 재미를 느끼게 합니다.

안서체의 한글도 사각 틀에 갖히지 않고 벗어난 점이 알파벳의 상하 노이즈와 비슷하네요. 안서체는 서법(Calligraphy)으로 전개하면 재미있어요. 정말 ‘미(美)’를 만들어내는 잉여도로 가득한 느낌이 듭니다.







증식∼변화하는 문자

[스기우라] 그런데 한글의 자형(字形)이 갖는 복합성, 즉 자음·모음·자음을 겹쳐 쌓는 구조는 지금 유행인 ‘얼굴문자*2(역자주- 이모티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도 기호를 겹치거나 결합시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알파벳이나 가나문자의 균질성에서 나온 감정을, 현재 사용되는 기호로 표현합니다. 컴퓨터의 건조한 화면과 마주한 젊은이들이 그만 둘래야 그만둘 수 없는 자발적인 기호 창조의 움직임이라고 할까요?

이런 측면에서 이모티 콘이라는 발상과 한글같은 복합적 자형을 국제화하려는 사고가 앞으로 병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인터넷에서 한자의 가능성을 끌어내는 것과도 통합니다.



[안상수] 얼굴문자, 즉 이모티콘은 현재 단순한 기호와 아이콘을 사용해 간단한 의미를 표기하고 있을 뿐이지만 모두 점차 복잡한 개념을 표시하게 될 겁니다. 새로운 상형문자에 대한 시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한국 문화 관광부의 의뢰로 ‘한국 이미지 홍보 포스터’를 만든 적이 있습니다. ‘관음의 얼굴(觀音顔)’이라는 타이틀로 한글 모음을 사용해 한국의 이미지를 표현했습니다. (111쪽, 그림 6 참조)



[스기우라] 오리지널 안(安)이모티콘이네요.(웃음)



안상수: 한국어 모음에는 밝은 느낌의 양성모음과 어두운 느낌의 음성모음, 그 중간에 중성모음이 있습니다. 이 포스터는 중성 모음을 조합해 한국인의 표정을 나타냈습니다. 저는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무표정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웃음)



[안상수] 아니에요. 반대인 것 같은데요.(웃음) 일본인이 더 무표정한 느낌인데요.



[안상수] 그런가요(웃음). 인터넷에서 이모티콘으로 우는 표정은 음성모음을 조합해 그려내고, 웃는 얼굴은 양성모음으로 표현합니다. 공교롭게도 이모티콘으로 쓰이는 요소(모음)자체가 이미 음양(陰陽)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어요.(그림11)



[스기우라] 음양론에 뿌리를 둔 재미있는 발상이네요. 한국인들은 이 이모티콘의 이미지를 바로 공유할 수 있군요.

한자도 좀 비슷한 점이 있어요. 한자는 편(偏)과 방(旁) 혹은 관(冠)과 각(脚)이라는 몇 개의 요소로 이루어진 합성 문자입니다. 저는 한자라는 문자 체계는 다양한 요소를 포함하는 ‘만다라 문자’라고 생각하는데, 한자 합성법과 한글 합성법은 매우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한자와 한글이 다른 점은 한자에서는 음의 합성뿐만 아니라 의미의 혼합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의미의 반, 음의 반을 조합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한글의 경우는 문자 전체가 음의 합성이죠. 이점이 매우 큰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는 옛날부터 한자놀이가 유행했습니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한자를 만들기도 하고 주간지 등에서 퀴즈를 내기도 합니다. 다양한 예가 있는데 예를 들면 ‘고개 상(峠)’자는 일본에서 만든 문자로 산기슭을 넘는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 글자를 보고 미국인이 뫼 산변 대신 女를 넣어 ‘엘레비에터 걸’이라고 했다네요. (웃음) 그런 식으로 두 가지 혹은 그 이상의 요소를 복합시키면 현대 사회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문자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요. 중국에서 최근 만든 문자 ‘불화(火)’변과 ‘헤아릴 상(商)’을 조합한 이 문자는 엔트로피*3(역자주: 열역학의 단위, 어떤 계통의 온도 압력 밀도의 함수로 표시된 양의 단위 등 )를 나타낸다고 해요.(웃음) 학계 용어로 등록되어 있어요.



[안상수] 확실히 한자는 표의문자이기 때문에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하는 효과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하나의 개념마다 하나의 문자를 갖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요리를 만드는 법에 있어서도 ‘끓인다’, ‘볶는다’, ‘찐다’등의 문자가 있습니다. 즉 새로운 개념이 생기면 새로운 문자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스기우라 씨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렇게 새롭게 만들어가다 보면 점점 문자가 늘어나지 않을까요? (웃음)



[스기우라] 현대사회에서는 다양한 개념이 진화하며 꾸준히 증식하고 있습니다.

영어권에서도 복합어가 늘어나고 있구요. 중국에서는 그것을 어떻게든 한자로 바꿔 표현하려고 합니다. ‘電腦*4(역자주: 중국어로 컴퓨터)’가 그 대표적인 사례죠.

한편으로 이토 가토이치(伊藤勝一)씨는 『한자의 감자(漢字の感字)』(朗文堂, 1986)이라는 작품집에서 이런 실험을 했습니다. (그림12) ‘금할 금(禁)’이라는 한자 안에 금지를 뜻하는 ×를 넣는 겁니다. 한자에 다른 기호를 넣어 어린이들도 알 수 있게 의미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자와 한글은 문자를 복합시킬 수 있다는 점이 비슷합니다. 그렇게 다시 생각하면 한자와 한글은 훨씬 더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있겠네요.



다다이즘과 한글의 문자 실험

역자주: 다다이즘- 제 1차 세계대전(1914∼1918) 때부터 전후에 걸쳐 유럽과 미국에서 전개된 미술 및 문학상의 운동으로 반미학적(反美學的)·반도덕적인 태도가 특색이다. 다다(dada)라고도 한다.



[스기우라] 안상수씨의 박사논문은 일본의 식민지 시대, 조선에서 시를 쓴 한국 시인에 관한 것이죠.



[안상수] 이상(1910-1937)이라는 시인입니다. 그는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그림도 그렸습니다. 마지막에는 도쿄에서 체포·구금되었고 석방된 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상선생은 한국 현대 타이포그라피의 효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한때 인쇄소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굉장히 활자에 민감한 사람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얼마 후에 나는 역도병에 걸렸다. 나는 매일 인쇄소에 문선하러 병든 몸을 끌고 갔다.’ 활자는 인쇄되는 문자와 반대 방향이 되죠. 그는 활자와 자신을 일치시켰습니다. ‘역도병’에 걸렸다고 했듯 자기 자신을 ‘활자인간’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또 이런 문장도 있습니다. ‘나는 내 문자를 가두어버렸다.’, ‘흙 속에는 봄의 식자가 있다’



스기우라: 전쟁 전, 일본에서도 문학가나 전위시인은 가난해서 인쇄소 문선공으로 일했어요. 그곳은 인텔리나 반체제 인사들의 집합소였죠.



[안상수] 이상 선생은 난해한 표현으로 유명한데 1934년에 조선중앙일보에 발표한 시 『오감도(烏瞰圖)』가 특히 유명합니다. (그림 13) 여기에서 숫자는 거울에 비친 문자처럼 거꾸로 되어 있어요. 한국에서 거울은 불길함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일부러 ‘조감도(鳥瞰圖)의 한 획을 빼서 오감도(烏瞰圖)라는 제목을 붙인 것입니다. 이것도 역시 ‘역도(逆倒)’의 표현이죠.



[스기우라] 문선공은 활자 케이스가 진열된 사이를, 좌우로 돌아다니며 문자를 주워나갑니다. 자신의 몸으로 기억해두는 거죠. 시커먼 납활자, 반대로 되어 있는 활자를 손끝으로 찾아 이동하면서 줍는 동안, 아주 자연스레 거울에 비친 화면이나 까마귀의 이미지가 떠올라 만든 작품인 것 같네요.



[안상수] 서양에서도 다다이즘이나 미래파들이 문자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다다이즘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활자와 자신을 분리함으로써 활자라는 물성을 대상화해 갖고 놉니다. 말하자면 유희를 즐기는 것인데 이상선생은 활자와 자신을 동일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타이포그라피적인 표현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던 겁니다.

한자를 사용하도록 강요한 시대였기 때문에 한글로 쓴 시가 거의 없다는 점이 아쉽습니다만...



[스기우라] 안상수씨가 친구와 함께 만든 책이 있죠. (그림 14) 한글을 패턴처럼 나열하거나 문자 요소를 분석해 사용하는 등 다양한 실험을 하셨죠. 그것은 읽는 건가요? 보는 건가요?



[안상수] 그것은 보는 것인데 동시에 소리도 느낄 수 있습니다. 한글은 조합에 의해 새로운 음을 만들 수 있는 열린 구조로 된 문자입니다.



[스기우라] 아, 그렇습니까. 새로운 음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건 제가 미처 깨닫지 못한 한글의 특성이네요.



[안상수] 한글은 표음문자인데 시간적 문자라고도 할 수 있어요. 표음문자란 청각에 의지하기 때문에 그 커뮤니케이션은 아무래도 시간적으로 됩니다. 영어도 대표적인 시간적 문자죠. 그에 대해 한자는 공간적 문자라고 할 수 있어요.



[스기우라] 안상수씨가 공들이며 꾸준히 거듭해온 이런 한글 실험은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주었죠. 한국 젊은 디자이너들도 자극을 받아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림 15)



[안상수] 예를 들면 민병걸씨는 <문자진화>라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110페이지 그림 3)이것은 한글의 가능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빨간 한글은 현재 쓰이는 문자이고 회색은 옛날에 있었지만 지금은 쓰지 않는 문자, 혹은 가능성으로써 있을 수 있는 문자를 표시한 것입니다. 일본어에는 있고 한국어에는 없는 발음, 가령 ‘づ'([du]와 [zu]의 중간발음) , 'ず'([zu]) 발음은 한글에 없지만 이 작품에는 표현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1940년대에는 한국어에 없는 발음, 가령 영어의 ‘F’발음을 표시하는데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 교과서로 사용한 사례도 있습니다.



[스기우라]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한글의 연장으로 연구한 것이군요. 재미있는 시도네요.



문자는 멀티미디어가 된다.

[스기우라] 문자에 관한 또 하나의 문제점은 ‘읽는 사람이 소리를 잃어버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자는 눈으로 읽지만 음성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과거의 문자는 소리내 읽는 것이었지만 현대의 문자는 음성을 잃어버려 종이 위에 쥐 죽은 듯 조용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일본에서는 이제서야 좋은 문장을 소리내 읽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안상수] 한국에서도 전위 화가나 전위 예술가들은 소리내어 읽기도 하고 몸짓이나 소리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현대무용가인 홍신자씨는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책을 ‘귀’로 만났습니다. 제 아버지는 할머니를 위해 밤마다 책을 읽어 주셨죠. 저는 한 쪽에서 그것을 들으면서 ‘귀’로 읽은 거에요. 문자를 깨친 사람이 적었던 시절에는 책을 큰 소리로 읽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아버지도 음악처럼 책을 읽으셨어요. 묵독으로 음악을 읽은 거죠. 문자는 바로 음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일본에서 노(能)*6 (역자주: 일본 남북조 ~무로마치시대에 성립된 전통극)의 무대를 처음 봤을 때도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스기우라] 인터넷 문자도 완전히 소리를 잃었어요. 물론 인터넷으로 교환하는 문자까지 소리낼 필요가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지만... 어쨌든 문자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호흡을 불어넣어 생명력을 전하는 것이어야만 합니다. 이 때 음성과 문자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를 생각해야죠.



[안상수] 작곡가인 존 케이지는 음악적인 실험을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특히 좋아하는 것은 그의 악보입니다. 그것은 굉장히 타이포그라피적인, 매우 독특한 것입니다.



[스기우라] 매우 재미있는 문자로 디자인 센스가 넘치죠. 케이지는 다다이즘이나 미래파 작품을 이어가며, 좀 다른 위상에서 소리와 형태의 뜻밖의 연결관계를 제시했습니다. 그후 음악가, 예술가에게 많은 힌트를 줬죠.

저도 현대 음악을 자주 듣습니다만 예를 들어 1960년대 초 전자음악을 만든 루치아노 베리오(역자주: Berio, Angelo Luciano,이탈리아의 대표적 작곡가. 1955년 밀라노의 이탈리아방송협회의 전자음악 창설에 참가하고, 전자음악과 전위적 작품을 발표했다. 노노 ·마데르나 등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작곡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는 언어와 소리를 해체해 매우 보기 좋게 재구성했습니다. <조이스 찬가>라는 작품이죠. 그의 부인으로 뛰어난 음악가이기도 한 캐시 바바리안은 소리로만 만화 장면을 콜라쥬하여 오노마토페 (역자주:onomatope- 의음어, 의성어, 의태어를 포괄하는 말)를 부르는 매력적인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스토리 포소디>라는 곡에서 코믹 만화를 보기 좋게 음악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소리와 소리의 형태가 갖는 관계는 본래 문자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공감각(Synesthesia)’이라 부르죠. 그런데 오늘날 저는 문자 속에서 소리의 울림을 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안상수씨는 이미 예전에 한글 구조에 맞춰 이 문제를 깨달으셨습니다. 그리고 다다이즘의 타이포그라피나 미래파의 움직임에 대한 식견을 넓혀, 문자가 그저 단순한 의미전달을 위한 시각적 표현만이 아님을 찾아내려 하셨죠.



[안상수] 그것은 제가 만든 재즈 콘서트의 포스터입니다. (그림 17) 강태환이라는 섹스폰 연주자의 것인데 제게는 그의 섹스폰 소리가 이렇게 들렸습니다. 소리가 겹쳐 도치되고 반복되는 이미지를 그대로 표현한 것입니다.



[스기우라] 그래서 문자가 춤추고 있군요. (웃음)



[안상수] 저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만약 문자와 소리가 링크된다면, 만일 이모티콘에 소리가 탑재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문자와 소리 사이에 읽는 사람이 천천히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것 아닐까요... 그건 잃어버린 소리를 떠올리는 방법이나 새로운 소리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좋을 것 같습니다.



[스기우라] 문자와 소리가 만남으로써 새로운 회의 문자(會意文字)가 태어납니다. 문자와 문자의 회의(會意)가 아니라 듣는 것이나 닿는 것이 회의(會意)되는 등 오감(五感)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멀티미디어로 발전하는 겁니다. 즉 문자가 멀티미디어가 되는 거죠.



암호와 유토피아

[스기우라] 최근 시인인 김지하(1914∼)씨와 교류하게 되었다구요.



[안상수] 김지하 선생은 제가 독자로서 늘 존경해온 분인데 2∼3년전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거기서 제가 연구한 한글에 대해 이야기했죠. 굉장히 흥미로워 하시길래 저는 ‘역(易)’으로써의 한글에 흥미를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주역」은 ‘주(周)’, 즉 중국의 ‘역(易)’인데 한국에도 ‘역(易)’이 있습니다. 19세기 말 완성된 김일부 선생의 『정역(正易)』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한글 역(易)’이 있을 수 있음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김지하선생은 제게 ‘주역공부를 같이 해보지 않겠나’라고 제안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많이 놀랐어요. 저도 전부터 ‘역(易)’에 흥미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잘 설명할 수 없지만, 마치 프로그래밍된 것처럼 같은 분야에 흥미를 가진 두 사람이 만난 거죠.

그래서 작년 봄, 일주일에 1번 김지하씨와 원주에 가서 함께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원주까지는 2시간쯤 걸리는데 드라이브하면서 둘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스기우라] 안상수씨의 아뜨리에에는 여기 저기 글자가 쓰여있는 큰 종이가 많아요. 문자가 파도치거나 겹쳐지며 삐그덕거리며 외치는 것 같은 느낌의 종이들 말이에요. 그것은 김지하씨와 나눈 대담의 결과인가요?



[안상수] 작년에는 김지하 선생의 부탁으로 『김지하 전집』 장정을 맡았습니다.

표지에 쓰인 문자는 제가 만든 기호를 김지하씨가 붓으로 쓴 것입니다. 김지하씨의 존재 자체가 굉장히 ‘암호’같다고 생각한 거에요... 당시 둘이서 암호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습니다.

김지하씨는 암호란 문자로 표기할 수 없는 것이나 마음의 움직임 등을 표현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동감해요. 문자로 명확한 의미를 전달할 수 없는 경우가 많지만 암호는 그것을 넘어선 차원이라고 생각해요.



[스기우라] 각 권에 문자를 8개씩, 전부 24개로 구성했네요. 한글을 바탕으로 한 암호인가요?



[안상수] 한글이나 한자에 없는 제 3의 문자일 겁니다. 제가 만든 <언어는 별이다. 의미가 되어 땅에 떨어진다>는 작품이 있습니다.(그림 19)

의미가 발생하기 전의 언어는 우주의 비밀로 가득 찬 해독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문자를 통해 우주의 비밀을 해결하려 했습니다. 문자가 의미화되면 개념 영역에 갖혀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언어로 보충할 수 없는 것은 아직도 비밀인 채 남아있습니다. 이 비밀을 꺼내 형태를 전달하는 것이 암호라 할 수 있죠.



[스기우라] 아직 해독되지 않은 문자나 암호는 일종의 유토피아 문자죠. 현실을 넘어 이상을 공유하는... 감성이나 이상의 일치를 문자나 도형에 맡기려는 걸까요...



‘문자의 성(城)’이 바뀐다.

[안상수] 저는 한자 한 글자 한 글자를 가만히 보면 몇 겹씩 겹쳐진 층이 시공간을 확대해나가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문자에 의미나 개념의 아우라가 느껴집니다.

그와 비교해 알파벳은 평면적이에요. 제 고향을 잃어버린 문자가 스스로의 근본을 찾기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것이 다다이즘이나 미래파가 시도한 실험 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의미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부르짖으며 새로운 그림, 혹은 이미지를 창조하는데 전력을 다하는 것이겠죠.

저는 책은 문자로 구축된 ‘성’이라고 생각합니다. 20세기까지 책 문화는 알파벳이 중심을 이루는 ‘문자의 성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가 다양해진 현재, 이제는 알파벳 문화권의 ’이문화(異文化)‘, 즉 한자나 한글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스기우라] 알파벳 문화권 사람들은 굉장한 고민에 빠져있습니다.

왜냐하면 안상수씨의 말을 빌리면 세계는 ‘문자의 성’으로 쌓여있고 그 가운데에는 알파벳으로 가득합니다.

알파벳의 문제점은 균일하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점, 한 획이 단순화되어 만들어졌기 때문에 한 글자 한 글자의 획수나 농도가 거의 같습니다. 기능적으로 기억하거나 표기하기는 쉽지만 바라보고 있으면 전혀 재미가 없어요. 단순한 날들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느낌이랄까요. 새로운 개념이 증식해 끊임없이 문자가 연쇄적으로 확대됩니다. 무언가 하고 싶지만 알파벳만으로는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는 겁니다.

읽는 행위에 뭔가 자극적인 드라마가 필요합니다. 즉, 자연스럽게 눈의 힘, 무언가를 보려는 인간의 감성이 요구되는 거죠.

그런 점에서 최근 구미의 첨단 타이포그라퍼들은 고딕을 다용하거나 약어로 표기해 단축하거나 2개 문자를 접합해 새로운 표의문자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시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요.

그렇게 되면 문자 표현은 앞으로 점차 복합적인 것을 지향하게 됩니다. 만다라를 이루는 문자집합이 되는 거죠. 알파벳 나열보다 좀 더 농담(濃淡)이 있으며 역동성 있는 형태가 됩니다. 평탄하게 진열된 가운데에서 뭔가 혼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죠. 이렇게 균일한 문자들 속에 조금씩 혼이 생긴다면 그 시점이 바로 시작입니다. 바로 이것이 갖는 의미가얼마나 중요한지 빨리 찾아내게 될 겁니다.

저는 ‘문자의 성’은 균일하고 균질한 문자의 흐름으로 기울지 않고 의미를 표출하기 쉬운 농도로 변화하는 것 아닌가 예상합니다. (그림 21)

그 때 ‘한글의 복합성’이나 ‘한자의 조자법(造字法)’이 다시 한 번 문제가 될 거에요. 한글 합성법이나 이모티콘은 그것을 예언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상수] 저도 이모티콘이 인터넷상에서 하나의 문자 체계로서 발전해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평면적인 알파벳을 사용한 사람들이 뭔가 부족함을 느꼈던 부분을, 새로운 상형 문자의 가능성으로 이모티콘이 보완하게 되는 것 아닐까요?



[스기우라] 현재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전자망은 ‘성’이 되어 세계를 삼키려하지만 그 텍스트는 99.99%가 알파벳이죠.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한글이나 한자, 그 외 아시아 문자나 이모티콘, 암호들이 좀 더 인터넷 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려면 지금까지와 다른, 균일한 것이 아니라 변화를 포함한 새로운 문자 체계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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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기우라 고헤이(杉浦康平)

1932년 도쿄 출생. 1955년 도쿄예술대학 건축학과 졸업. 1964-67년 독일 울름조형대학 객원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고베神戶예술공과대학 교수이다.
1970년경부터 북디자인 작업을 시작으로 독자적인 비주얼 커뮤니케이션론, 만다라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의 이미지圖像 연구, 지각론知覺論, 음악론 등의 독특한 이론을 전개해왔다.
닛센미日宣美상, 마이니치每日산업디자인상, 문화청예술선장 신인상, 라이프치히 장정裝幀콩쿨에서 특별명예상, 매일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주된 편, 저서는 <비주얼 커뮤니케이션>(공편, 講談社), <문자의 우주>, <문자의 축제>(공저, 寫硏), <아시아의 우주관>(공편, 講談社), <아시아의 코스모스+만다라>(공편), <화우주花宇宙=生命樹>(공편 NHK Enterprise), <입체로 보는 별의 책>(공저, 福音館書店), <일본의 형태, 아시아의 형태>(三省堂), <원상圓相의 예술공학>(편/공저, 工作舍)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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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옴}



아래는 안상수 교수의 블로그
http://www.ssahn.com






210.108.93.96KENWOOD 10/16[08:50]
음,,,@@
211.54.30.92무척 10/16[09:57]
좋은 말씀들이지만, 암튼 대한민국 아자아자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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