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인력시장에서 만난 근로자들의 한숨

새벽 인력시장에서 만난 근로자들의 한숨

0 1,580 2004.11.25 19:45
새벽 인력시장에서 만난 근로자들의 한숨

갑자기 수은주가 뚝 떨어진 26일 오전 5시 서울 구로구 ○○인력소개소 앞. 가로등과 24시간 해장국집 간판만이 어둠을 밝히고 있는 시간에 어깨에 가방 하나씩을 들쳐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날씨탓인지 이들은 인력소개소 앞에서 서성대거나 쪼그려 앉은 채 추위를 달래며 담배를 피웠다. 이 후 인력소개소 사무실 직원이 나타나자 이들은 황급히 담배를 끄더니 직원을 쫓아 사무실이 있는 3층으로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대기실을 거쳐 서른평 공간의 사무실에 들어간 이들은 사무실에 놓인 길다란 책상에 경쟁적으로 일자리를 신청하기 위한 등록증을 올려놓았다.

오전 5시 10분. 아직 사무실 안은 대 여섯명의 사람들만 있을 뿐 한적했다. "사람들이 얼마 없네요" 라는 질문에 사무실 직원은 "5시 20분부터는 정신 못차릴 것"이라며 "200~300여명의 사람들이 곧 몰려온다"이라고 말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람들이 끊임없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한산하던 대기실은 이제 서있는 자리조차 마땅치 않을 정도로 꽉찼다. 자리를 못잡은 이들은 사무실 밖 계단으로 밀려났다. 어떻게든 빨리 일자리를 구해 뜨고 싶은 사람들은 앞쪽으로 몰려들어 직원들을 재촉해보기도 하고 자기의 등록증을 잘보이는 쪽으로 옮겨 놓아보기도 했다.

"최○○씨, 박○○씨, 김○○씨 나오세요!", "안전화 없는 사람들은 가면 안돼!", "김씨는 팔힘 좋아? 리어카 끌 사람이 필요하다는데 가봐."

호명된 사람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고 남겨진 이들의 얼굴엔 초조한 기색이 역력해졌다. 잠시 후 직원의 "시멘트 일 할 수 있는 사람 없어요?" 라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세명이 동시에 번쩍 손을 들었다. 하지만 한 명 만이 일거리를 얻어 나갔다.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책상위에 가득 널려있던 인력 송출표가 어느새 모두 없어지고 대기실에는 20여명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하는 이들은 이제 언제 올지 모르는 인력요청 전화를 무작정 기다리고 있었다.

건설경기침체로 일용직 노동자들의 생계가 크게 위협받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국내 건설 수주액은 17조 5844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7.2%가 감소했으며 1분기도 14.2%가 감소했다.

○○인력개발 ○○○ 대표는 "경기 침체로 일자리는 줄었는데, 일용직을 찾는 사람들은 오히려 늘었다"며 "우리나라 사람 일당의 반밖에 받지 않는 외국인 노동자들 때문에 국내 노동자들이 일용직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대표는 이어 "일자리를 수주를 받기 위한 경쟁도 매우 심해졌다"며 "작년까지만 해도 안전장비를 현장에서 마련해 주었고, 또 그것이 원칙이지만 지금은 일하는 사람이 알아서 들고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같은 시간 서울 종로구 창신2동 창신약국 앞에는 100 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은 노점상에서 산 커피를 한 잔씩 들고 붉은 가로등 밑에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하면서도 초초한듯 연신 시계를 봤다. 일부 사람들은 인근 대포집에 들어가 안주도 없이 막걸리를 들이키고 있었다.

30여분이 지나자 모여 있던 사람들 중 '오야지'(일본에서 유래한 은어로 건설현장에서 인부를 모으는 책임자란 뜻)로 불리는 몇 사람이 몇몇 근로자들을 데리고 나갔다. 남아 있던 사람들은 일 나가는 동료들에게 "잘 나가네"하며 부러움 어린 시선을 보냈다.

18 년간 '공구리공’(공사 현장에서 콘크리트 작업을 하는 사람)으로 일했다는 김모(40)씨는 다가가자 “일 없으니 다른데 가서 알아보라"며 손사레를 쳤다. 김씨는 “그 힘들었던 IMF외환위기 시기도 잘 극복하고 견뎠는데 '노가다'생활 18년만에 이렇게 일이 없어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며 “전날 인력 책임자로부터 연락을 받지 않는 이상 당일 인력시장에서 일을 나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예전에는 한달에 20일 이상 일을 할 수 있어 근근히 먹고 살만했는데 지난 8월부터는 경력자인 나도 한 달에 열흘 밖에 일을 못 나간다"며 "애들 학원도 보내고 비수기인 겨울을 대비해 저축도 해야 되는데 벌이가 없으니 카드빚을 져 신용불량자가 되기 직전"이라며 한숨을 토해냈다.

6시가 되자 선택을 받지 못해 남아있는 사람들은 십여 명. 이들은 시장 근처 건물 옆에 모여 앉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35년간 창신동 인력시장을 찾았다는 강모(59)씨는 "혹시 눈먼 사람이라도 있으면 날 데려가주지 않을까 기다리는 것"이라며 "자식 놈이 대학생인데 대출받은 학자금 갚을 생각에 막막하다"고 말했다.

강씨는 또 "예전에는 이렇게 남은 사람들끼리 막걸리도 한잔 하고 그랬는데 요즘에는 막걸리 사먹을 돈도 없어 그냥 집에 들어가 벽만 바라보는 일이 많다"며 "정말 능력 좋고 기술 좋은 사람도 일하기 힘든 요즘에 나 같이 나이 먹은 사람에게는 일도 잘 안돌아오니 제발 경제 좋아지게 내가 한말 좀 청와대에 전해달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또다시 10여분이 지나자 남은 이들도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큰 가방을 어깨에 버겁게 메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는 이들이 떠난 자리에는 담뱃재와 빈 종이컵만 쓸쓸히 쌓여 있었다





222.104.71.195늘처음처럼 11/25[20:02]
씁쓸함을 그들은 알것이다. 그렇게 어렵고 힘들다는 IMF도 우린 잘 견뎌 왔다. 이건만 넘기면, 이 힘든것만 넘기면 행복하게 웃을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게 아니다 정치판은 소꿉장난 하듯 자기들끼리 싸우고, 온갖 부정부패가 속출하고, 요즘 새벽녘을 보면 너무나 조용하다 못해 을씨년 스럽다... 장사가 되질 않아 아무렇게나 뒹구는 식당의 의자들과 식탁, 술에 의지해 아무렇게나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

222.104.71.195늘처음처럼 11/25[20:04]
활기찬 모습을 찾을래야 찾을수가 없다. 어떻게 하면 한푼이라도 아낄수 있는지 그것만 고민하고 손톱 여물썰듯이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들...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는 무엇이며 우리가 후세에 물려줄것들은 무엇일까... 아니 물려주기는 커녕 우리가 그들에게 보이는 모습은 어떤 모습들일까.. 한탕주의, 한방에 털고 일어서는 그런 안일한 생각들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생긴다.
211.179.171.17794 11/25[23:02]
카드 빚을 져 신용불량이 되기 직전인 사람이 아직 있었군여~. 난 다 된줄 알았는데... -_-;;그래도 거시경제는 조오타 잖아요. 맨날 거시기한 말만 해데니. 난 첨에 거세경젠줄 알았다니까요. 생긴 안들어 본 말 같아서.. 또 어떤 님은 그러겠죠. 공부나 좀 하라고.. 그래 공부 많이 한 놈들이 경제를 이 따우로 맹그냐?
222.104.71.195늘처음처럼 11/26[15:41]
ㅋㅋ 그러게요...

Comments